우리 영산영월신씨는 5세에 이르러 2분의 형제 (문종공, 상장군공)의 후손이다
문종공 覺繼의 후손은 6세 백련百鍊 7세 시어사공 희喜 8세 지화至和
9세에 이르러 4개파로 나뉘니 덕재, 초당, 부원군, 판서공 파로 나뉘었다
상장군공 周繼주계의 후손은 6세 순현 傍 순상 7세 극규 傍 극순 8세 취중 공근(朝奉大夫), 혁기
9世 지의(郎將), 흔(郎將). 良起양기(奉翊大夫) 등이 계셨으나 無后하였고
공근의 子 成烈성열 : 高麗忠烈壬午 1282生 丙午 文科 中正大夫 公의 후손이 현 상장군공 계 문중이다.
5世 長子 覺繼각계
高麗明宗乙巳1185生 희종무진에(1208)년에 급제하여 수문전대제학서원백修文殿大提學西原伯에 이르렀고 시호가 문종공이다. 익재 이게현이 가로되 할아버지와 손작가 같은 항렬자로 되어있는 사례는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흔히 있다 하였다. 여기 문종공의 이름과 제학공의 이름자에 같은 이름이 있는것을 이로서 고증한다.
1970년에 신위를 영격사에 봉안하다. 1981년에는 화봉재사 서편에 영단을 설단하고 해마다 향사를 올렸었다.
2004년 문중이 협의하여 영산의 영격사에서 매년 양력 10월 3일에 추향제를 올리는 것으로 뜻이 모아졌다.
5世 2子 千繼천계
高麗明宗己酉1189生 熙宗庚午及第
5世 3子 縣繼현계
高麗明宗癸丑1193生 高宗甲戌及第
5世 4子 周繼주계
高麗明宗丙辰1196生 高宗甲戌 1214及第 정아상장군正衙上將軍 (한편判書라고도 함) 1970년 神位를 詠格祠에 봉안하였다
文宗公과 上將軍公의 묘소가 실전되어 1981년 1981년에는 화봉재사 서편에 영단을 설단하고 해마다 향사를 올렸었다.
2004년 문중이 협의하여 영산의 영격사에서 매년 양력 10월 3일에 추향제를 올리는 것으로 뜻이 모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