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씨인물
축산군鷲山君
신극례辛克禮
공민기해(1359生)
1373년 文科
9世 혁革 祖의 증손
11世 귀貴(좌정승)
의 3男
언양입향조 13세
을화乙和의 선친
조선전기 예조전서, 좌군동지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제1차 왕자의 난 때 상장군으로 있으면서 공을 세워
태조太祖 무인戊寅 개국정사2등공신으로 록봉되다.
태종太宗 신사辛巳 정란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 녹훈되고, 취산군(鷲山君)에 봉하여졌다.
정종 · 태종 연간에 예조전서 ·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407년(태종 7)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등과 함께 종친간을 이간질하였다 하여 이화(李和) 등의 탄핵을 받아 강원도 원주에 유배되었으나 태종의 지우를 받아 자원부처(自願付處 -유배에 처한 죄인이 원하는 곳에 기거하던 제도)하게 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의정부·사헌부·사간원 등의 계속되는 탄핵을 받아오다가 그 해 11월 양주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뒤에도
태종이 좌명공신으로 후하게 사부(賜賻)-부지(종이)200권과 米豆(쌀과콩) 각 50석을 하사-하고, 어전 조회를 사흘간이나 멈추었다.
묘墓는 양주에 있었다하나 실묘되었다. 태종이 예조에게 신극례의 예장은 청민백이지란(태조의 의재)의 예에 의거하여 상급으로 시행하라 하명하고관곽棺槨을 하사하고 부조묘를 광주에 세워 불천위로 제향하게 명하였으나 대원군시대에 철폐되었다.
그후 언양문중에서 공의 차남 게화季和 祖 후손의 양해하에 3남 13세 을화乙和 祖(언양입향조) 묘역 서편 계좌癸坐에 2002년 3월 10일 영단을 설치하여 봉안하였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산 44번지에 있는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 영의정축산군 휘 극례공 영단 전경 贈太宗輔國崇錄大夫議政府領議政 鷲山君 諱 克禮公靈檀 全景
우의정에 증직된 적도 없는데 무슨 영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