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신영도 (30世) 상장군공파 대종회 이사 거제종회 전 총무>
거제도 입향조는 휘諱 정보鼎保공이다, 호號는 제산濟山, 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 분성배씨盆城裵氏이고, 시조 정의공貞懿公 경鏡의 14세손이다. 公의 9대조 상장군上將軍 주계周繼는 상장군공파의 파조이다. 공의 증조曾祖 사천斯蕆은 봉익대부奉翊大夫 전공판서典工判書, 조부 식息은 절도사節度使이고, 부친 자영子寧은 군수郡守를 지내셨다.
서거정徐居正 문집文集 <종모당기終慕堂記>를 보면 공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세종世宗 갑자甲子에 서거정이 군사軍事 신정보辛鼎保 公과 함께 초시初試에 오르고, 또 군사軍事께서는 무예武藝의 재능才能과 관리로서의 재능이 뛰어나 여러 고을 수령守令을 역임歷任하는 동안 문무를 겸비兼備한 탁월한 치적治績으로 명성名聲을 널리 떨쳤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볼때 공公께서는 세종 때는 품계는 정3품 통정대부로서 태안군수 진위장군 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충과 효를 갖춘 선비 정신과 문무를 겸비한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공은 관리로서의 경영능력이 탁월한 목민관牧民官이지만 무재武才도 뛰어나 문종∼단종 치세에 호군진위장군護軍振威將軍으로 올라 무위武威를 떨쳐 세조 13년 6월에는 남이장군南怡將軍과 더불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군관軍官 신정보辛鼎保 등 37인에 대한 등용登用의 유지諭旨를 도총제사都摠制使 이준李浚에게 내린 바 있다. 14년 5월 경신庚申 어전御前에서 궁술弓術을 시범示範한 명장名將이다. 예종睿宗 즉위 후 公을 시기한 유자광 등 간신들의 모함에 빠지게 되었을 때 공조판서 남이南怡가 公의 무고함을 끝까지 주장한 바 있다. 생각컨데 公께서는 앞날의 화禍를 예측할 수 없는 불길한 상황이라 거제 하청으로 은거隱居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여생을 보내셨다. 하청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기기를‘어지러운 세상이 평정되면 고향 영산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공의 유언에 따라 외빈을 해 두었다가 고향 영산 옥천산 228번지로 이장하여 묘를 쓰고, 1995년 10월에 묘를 단장하고 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