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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씨인물 http://신석환辛碩丸 

                                                                                                             <신상섭 (28世) 초당공파 언양문중 전 회장>

무고한 동료를 벌줄 수 없다 하여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 벼슬도 버리고 은둔한 언양 입향조入鄕祖 신석환

울산·울주 삼동면에 최초로 정착한 입향조가 석환碩丸 할아버지이다. 초명은 석환錫環, 호號는 아송我松이며, 시조始祖 정의공貞懿公으로 부터 15세손이다. 석환碩丸은 초당공 파조 혁革의 증손인 공신功臣 축산군鷲山君 극례克禮(12세손)의 증손이며, 부친 대해大海는 종2품 충의위忠義衛의 장將이며, 모친은 숙부인淑夫人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碩丸은 조선조 7대 세조 6년인 1461년에 출생하여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충의위忠義衛의 장將을 역임하고 품계는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도총관都摠管에 이른다. 1498(연산군 4)년 김일손의 사초史草문제를 빌미로 무오사화가 발발하자, 연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연산군이 석환을 의금부의 의금부지사義禁府知事에 겸임하도록 하였으나 사초에 연루된 동료가 무고함을 확신하고 그를 벌罰줄 수 없다는 소신으로 의금부지사를 극구 사양하게 된다. 그러나 어명御命을 어기면 대역죄가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고위직의 권신이 자리를 버리고 낙향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신의 영화를 버리게 된다. 

마침내 세속 정치의 영향권을 벗어나 있는 은둔처를 찾아 조정과 연을 끊고, 아름다운 산천을 시를 지어 노래하며 청경우독하는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가 오위도총부의 도총관이라는 현직顯職을 스스로 버리고 한성漢城을 벗어나 지화知火의 이웃인 대토리大吐里로 잠적潛跡하여 은둔隱遁한 곳이 축성천鷲城川변의 하잠荷岑이었다. 이곳 대토리는 자기소磁器所와 도기소陶器所가 있는 곳으로 축성천 변의 기암절벽과 축성사鷲城寺 사적지史蹟址가 있으며, 급류와 완류가 반복하며 구비치는 물줄기를 보면서 자신의 곤궁한 은둔생활을 스스로 즐기려 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은둔생활이 달관의 경지에 들었을 때 현감 계림김씨鷄林金氏 김자서의 여女와 재혼을 하게 되고, 1506년 46세에 득남하게 된다. 아름다운 축성천을 잊을 수가 없어 아들의 이름마저 축鷲이라 하게 된다. 아들 축鷲이 19살 때,‘1525(중종 20)년 을유년에 부친이 졸卒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둔생활 중 사망하여 묘소가 확인 되지 않아 한참 뒤 후손들이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에 부친 대해大海의 선영 아래에 1993년 설단設壇하고 기적비紀蹟碑를 세우게 된다. 

 

은둔시절에 둔 아들, 종4품 조산대부朝散大夫 기자전箕子殿 참봉 신축辛鷲

시조 정의공貞懿公으로 부터 16세손인 축鷲은 부父가 석환이요 모母는 정부인貞夫人 계림김씨鷄林金氏이다. 1506년에 출생하였으며 초명은 축, 자字 천우天佑, 호號는 동헌東軒이다. 부친의 은둔생활로 칩거蟄居하며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1545년 문과 생진시 복시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게된다. 1549(명종明宗 4)년 조정에서 부친의 공덕이 인정되어 음사蔭仕로 조산대부朝散大夫의 직을 내려 기자전箕子殿의 참봉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 1577(선조 10)년 졸하였으며 선영은 하잠 서편 인동곡 등에 배配 영인令人 평산신씨平山申氏와 합분合墳되어 있으며, 父가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은둔생활을 하던 축성천鷲城川 변을 바라보고 후손들이 잘되길 기원하며 잠들어 있다.  

 

손자 광윤光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충보국을 혈맹血盟한 의병장義兵將 

17世 광윤은 공신功臣 극례克禮 12世의 5세 손이며 15세 석환의 장손이다. 16世 동헌東軒 축鷲의 아들이다. 자字 언승彦承, 호號 의용헌義勇軒이다. 1549(명종 4)년 출생하였다. 1571(선조 4)년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참군訓鍊院參軍 1576(선조 9)년 어영위좌부장御營衛左部將이 되었으며, 1592(선조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장部將 광윤光胤은 장남인 첨정僉正 종4품 전荃과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 한 구강회맹록鷗江會盟錄에 등재하고 무용武勇이 뛰어난 公은 스스로 호號를 의용장義勇將이라 부르며 아들 전荃과 같이 의병장으로 언양 사자평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임진왜란 중인 1592(선조 25 임진)년 수문장守門將이 되고 1594(선조27 갑오)년 무과武科 중시重試에 급제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난 후인 1605(선조 38 을사)년에 선무원종 공신 3등으로 녹훈錄勳되고 1606(선조 39 병오)년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첨정僉正으로 제수되고, 1607(선조 40)년 어모장군御侮將軍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에서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으로 승진하였다. 1617(광해 9, 정사)년에 졸卒했으며, 공의 선영은 언양읍 대곡리大谷里 산 155번지 동록東麓 가지산可芝山 최상 갑좌甲坐에 배配 숙부인淑夫人 동래정씨東萊鄭氏와 합분合墳되어 있다.                                                                                                                 [대종보 15호 201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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