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사당 僾然祠堂 <신현수 덕재공파 30세 씀>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 271 /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5호(1986.04.28지정 /
괴산군 비지정문화재 ( 史跡 )
배향인물: 신경행(辛景行) / 창건연대: 1688년(숙종 14년) / 향사일: 음력 정월 7일, 6월 8일
애연사당은 매년 음력 1월 7일 청난공신, 선무원종공신 예조판서 영성군 충익공 신경행 (淸難功臣 宣武原從功臣 禮曹判書 靈城君 忠翼公 辛景行)의 불천지위 제사 (不遷之位 祭祀)를 올리고 있는 불조묘(不祧廟) 사당이다.
충익공 신경행의 영정과 신위를 봉안하기 위하여 조선 숙종14년(1688)에 청안현 칠보산 아래 문방동에 群芳影堂을 건립하였고, 이 영당이 영조36년(1760) 군방서원(群芳書院)으로 승격하였으며, 순조7년(1807)에 영산신씨 덕재공파 派祖이시고 영성군의 8대선조인 고려 태학사 정당문학 문헌공 덕재(德齋) 신천(辛蕆)을 호서(湖西)지방 士林들이 이 지역이 덕재공이 말년에 은거했던 곳이고 祭祀之典이 있어야 합당하다며 公을 本孫과 협의 군방서원에 추봉(追奉)하여 병향(幷享)하다가 고종 5년(1868) 서원 훼철령(毁撤令)으로 인하여 서원이 철폐되어 철향(醊享)되었다,
애연사당은 군방서원이 철폐된 이후에 士林들이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 월은동에 건축한 影堂으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 맛배 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소슬 3문(格思門)과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고 담장을 둘렀다. 1982년. 2015년 각각 일부 보수하였다
祠堂에는 군방영당(群芳影堂) 군방서원(群芳書院) 율수당기(聿修堂紀) 구인재(求仁齋)라는 현판(懸板)이 보존되어있다.
忠翼公 辛景行 묘소
1) 묘비명(墓碑銘)
분충출기청난공신 영성군 증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 춘 추관사 행 가선대부 충청도병마절도사 충익공 신경행
배 정부인 전주최씨 합조 묘소
2) 충청북도 문화재 지정 내용
○ 문화재명 : 충익공 신경행 묘소(忠翼公 辛景行 墓所)
○ 구조양식 : 1623년에 조성된 사대부(士大夫) 묘소
1995년에 봉분만 둘레석으로 보수
2011년에 봉분 둘레석 제거 및 진입로 계단설치
○ 보호구역 : 1곽
증평읍 남차리 산3-1 임야 123.664㎡중 625㎡
○ 소유·관리자 : 수현 영산신씨 종중
3) 公의 약력
公께서는 1547년에 출생하여 1623년까지 사셨으며 부인은 1628에 생 을 마쳤다. 자는 백도(伯道), 호는 조은(釣隱), 시호는 충익(忠翼), 본 관은 영산(靈山)으로 17세 자손이시고 덕재공파이시다.
진사시와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여 청난공신 영성 군에 봉군 되였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호서지방에서 크게 활약 하여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훈되였다.
병조좌랑 군수 부사 목사 동부승지 충청도병마절도사를 비롯 사신(使 臣)등 내외관직에 재임 하실 때에는 선치(善治)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록선되는 등 크게 빛낸 역사적 인물이시다.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 춘추관사(資憲大夫 禮曹判書 兼 知經筵 義 禁府 春秋館事)에 증직되고 순조11년(1811)에 충익공(忠翼公)의 시호가 주어졌 다. 공을 가리켜 비변사(備邊司)는 이렇게 평하고 있다.“재주는 문무를 겸비하고 행동은 청렴과 충효를 온전히 하였다.
(동자석이 2005년에 도난 되였음)
4) 묘지명(墓地銘)
公은 이미 김이영이 편찬한 바에서 다 말했다. 생각건대 이 늙고 졸렬 한 사람이 어찌 한마디 말을 덧 붙이겠는가 마는 후예의 청을 어쩌지 못해 명(銘)을 쓴다.
오직 公의 德器는 문무를 온전히 겸했도다. 자주 奇功을 세웠으니 직 위가 封君에 까지 이르렀도다. 관직에 있으면서 직분을 지켰으니 한결 같이 廉자로 임했도다. 기미를 보고 만절을 지켰으니 관직을 그만두고 鄕里에 돌아 갔도다. 은거하며 반계(磻溪)에서 낚시했으니 그 자취 오 직 본받을 만 하네. 나이 칠순이 지냈으니 의당 더 장수해야 했었도다. 유궁(幽宮)에 편안 하심이여 탄현(지금 수현)에 묻혔도다. 오직 하늘이 도와주시어 자손이 장차 번성하리라. 위와 같이 비석에 말을 새겼으니 이산과 終始를 함께하리라.
임술중춘 그믐에 풍양 조병집 씀
충익공 신경행의 묘소(墓所) 《충청북도 지방문화재 제132호 지정》 증평읍 남차1리 산소골에 있으며 조선시대 사대부의 묘소를 갖추었으며 200평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