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암정은 경남 창녕군 계성면(桂城面) 사리(舍里)에 소재(所在)하고 있으며, 18세 상장군파 신초(辛礎:1568~1637년)가 지은 정자이
다. 신초의 자(字)는 지수(支叟) 호(號)는 문암(聞巖)이다. 현풍현감, 보성군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15세 종모당(終慕堂) 주(柱)의 증손
(曾孫)으로 생부(生父)는 목사(牧使) 희수(希壽), 양부(養父)는 봉사(奉事) 완(琬)이다. 목사공(牧使公)은 7남을 두었는데, 재략이 모두 뛰
어났으며 공(公)이 다섯째 아들이다. 신초는무과에 급제한 뒤 1591년(선조24) 천성(天城) 만호(萬戶:종4품의 무관 벼슬)가 되어 이듬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성에서 싸웠으나 성이 함락되자 고향 창녕으로 올라와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공을 세우고 현풍현감(玄
風縣監)이 되었다. 선정(善政)과 적에 대한 방비를 굳게 하여 영남지방에서 이름을 떨쳤고 70세에 고종명하였다. 문암공은 비록 무인이
지만 문을 사랑해 무중군자(武中君子)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종(高宗) 29년 임진(壬辰 1892)에 증 병조판서 겸 판의금(贈 兵曹判書 兼 判義琴)의 관직(官職)과 충장(忠壯)이란 시호(諡號)를 받
았다. 신초(辛礎)는 말년에 이곳에다 정자를 짓고 보냈는데 자신의 호를 따 문암정이라 했다. 그때 심은 배롱 나무 군락과 소나무 들이 둘러서서 정자를 포근히 감싸고 있고 지금은 신초영정(辛楚影幀)과 비각(碑閣)은 문화재 자료 제25호(1983년 8월 1일지정)로 지정되었으며 문암정의 앞은 절벽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절벽에 자라고 있는 배롱나무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9호로 지정된 계성면 사리 배롱나무군 이다. 봄에 꽃이피면 아주 아름다우며 문암정은 먼 곳에서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입지가 좋은 곳에 지어져 있다. 또한 배롱나무군앞의 개
울물은 맑기 그지없고 자리도 좋아 여름에 많은이들이 찾는 피서의 명소이기도 하다.
저서(著書)에 문암집(聞巖集) 3권과 문암 충의록(聞巖 忠義錄)이 있으며, 영산(靈山) 호국공원(護國公園) 기념탑(記念塔)에 공(公)의 이름이 있고, 창녕군 도천면 도천리에 염수재(念修齋)란 공(公)의 재사(齋舍)가 있다. <자료 제공, 신진기 31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