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정문화재자료 제105호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 41
신녕궁주 비
본관은 영월로, 검교 공조참의檢校工曹參議 신영귀辛永貴의 딸로, 본래는 원경왕후 민씨의 나인이었으나 1402년(태종 2년) 함녕군諴寧君 인裀을 낳고, 1414년 1월 13일 그 아들 인裀이 정윤正尹으로 봉해짐과 동시에 신녕옹주信寧翁主가 되었다. 그 후, 1422년(세종 4년) 태종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간호를 하여 신녕궁주愼寧宮主로 봉해졌고, 고종 대(1872년)에 와서 정1품 신빈信嬪으로 추증되었다. 태종의 수많은 후궁 중 가장 많은 총애를 얻은 후궁으로, 태종이 아플 때 간호할 권한을 신빈 신씨에게 주었으며 항상 곁에 두고자 했다. 원경왕후 사후에는 내명부를 총괄하며 내명부 상급권한을 누렸고 많은 일을 하였다.
1422년(세종 4), 그녀는 의빈 권씨와 함께 출가하였는데 《법화경法華經》을 등사하려 하여 세종은 종이를 주고 불경을 쓰게 하였다.
1423년(세종 5),신씨가 태종의 복을 빌고자 하여 세종은 문소전文昭殿의 불당佛堂에 금으로 불경을 쓰게 하였다. 1435년(세종 17) 졸하였으며, 세종은 비록 서모이지만 상장을 갖추고 친히 군신을 거느려 예로써 조문하였으며 수의도 하사 하였다. 국모에 준하는 예우를 해주었다. 능원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 13번지에 있다. 3단으로 된 묘. 봉분은 팔각형 둘레돌은 2단이다. 1441년에 세워진 묘표는 고려시대 유행했던 연꽃 모양이고‘信寧宮主 辛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묘표 앞에는 상석床石이 놓여 있으며 봉분 양옆에 있는 文人石은 닳아서 없어졌으며 장명등長明燈은 간략하고 가늘다. 장명등의 하대석下臺石 각 면에는 信, 寧, 宮, 主가 한 글자씩 새겨져 있다. 특히 이 묘역은 조선시대 후궁들의 묘역 중에서 궁주宮主라는 표식이 보이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묘 양식을 갖추고 있어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태종실록 세종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