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지역종회

고성 전포문중《뿌리와 잎새》발간

admin 2020.09.25 11:18 조회 수 : 56

백산맥 줄기 남쪽 끝자락, 고성군 마암면 보전리 전포(田浦:밭개), 임진왜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대첩지인 당항만의 깊숙한 연안에 따뜻하고 조용한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을 형성한 이곳에 고성 입향 선조께서 자리 잡고, 조상 대대로 살았다고 합니다만 후손들이 그 정확한 역사를 파악하기에는 전해오는 구전이나 기록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어느 성씨에서나 다 같이 겪고 있는 어려움입니다만 다행히도 우리 고성 입향 선조로 알려져 있는 휘 봉수(諱 鳳壽: 시조 공으로부터 18세)께서는 서기 1590년 (조선 선조23년) 경인년 증광시(增廣試)의과에 장원(1위)급제한 기록(조선시대 잡과 합격자 총람, 정신문화 연구원 소장)이 전하는 바 지금 2016년으로부터 약 410~420년 전인 1590년~1600년경에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서기 1592년 선조 25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7년 전쟁동안 남해안 일대에서는 격전지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민생이 계속된 지역이었다. 입향조이신 18세 휘 봉수께서 어떤 벼슬이나 직분을 가지고 이곳에 입향 하셨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증광시 합격증 기록만 있다. 7년 병란에 모두 소실되었거나 조선시대 중 가장 어려웠던 난세지경에 그 기록들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사실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또한 조상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지 못한 부족한 후손들이라 반성하면서 선대 조상들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해서는 그 내력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내력이 담겨 있는 가보를 볼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하는데 많은 분량의 족보, 파보 등 쉽고 편리하게 보기가 쉽지 않으며 서재에 보관만 하는 후손들이 많은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400여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문중 중심의 역사와 뿌리를 인식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도록 여러 가지 자료와 집안 어린들의 기억하고 전해지는 상식을 모아 작은 문집을 편집하고자 제1부 총론에서는 족보의 일반적 사항과 신辛씨 족보와 조상 이야기를 다루고, 제 2부에서는 시조 휘 경(諱 鏡)으로부터 9세까지와 5파로 분파된 과정, 제3부는 상장군공파를 위주로 한 11세 사천(호 곡강)에서 ~17세까지, 제 4부에서는 우리 고성전포 입향조 18세 휘 봉수 이후 현재까지를 지역의 역사적 배경 등을 고찰하고 타 지역으로의 이주 현황을 포함해 가장 중점적인 내용을 담고 제 5부에서는 추모공원 및 재실의 조성경위와 관리방안 등을 사진과 함께 담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하여 우리 문중 후손들이 숭조상문의 뿌리를 인식하여 계승하고 소유하고 있는 유적을 잘 관리하여 자손만대로 영원히 이어지는 소중한 문중 역사의 지침서가 되었으면 한다. 

 

-뿌리와 잎새 中 서문 발췌- 

 

신 판 세 (30世)

고성전포문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