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辛씨인물

신서담辛瑞聃

admin 2020.09.25 11:11 조회 수 : 171

辛씨인물  

어모장군禦侮將軍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

 

어모장군 신서담, 그는 여말선초에 걸쳐 당대 최고의 명가 출신이다. 그는 초당공파이며 시조로부터 15세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시조 경鏡은 인종 때 5재五宰의 하나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하신 아상亞相(현 부총리)이다. 우선 공의 가계家系를 보자, 公의 6대 조인 9세 초당공 좌찬성영산부원군左贊成靈山府院君 혁革이  초당공파의 파조이고, 초당公의 아들  합문지후閤門祗侯 원경原慶의 아들 부富는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함종절영咸從岊嶺에서 32세로 순국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니 공민왕이 그 충절을 기려 축산군鷲山君으로 봉하는데 그의 고조가 된다. 증조 유정有定은 선초에 강릉부사와 평안도안무사를 역임하고 시호는 무절武節이다, 조부 인손引孫은 세종조에 경상감사, 형조판서, 예문관대제학을 역임하였다. 부친 계조繼祖의 호는 일암이고 호조참판을 역임하셨다. 모친은 정부인貞夫人 초계草溪 鄭氏인데 동지중추부사 발發의 여식이다. 공은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부터 부친 참판공의 가르침을 받아 순탄하게 벼슬길에 올라 어모장군충무위부사직에 오른다. 벼슬길에서 은퇴한 후 양주楊洲에 살다가 늘 마음속에 그리던 산수가경山水佳景 상주尙州로 이거하여 만년을 보내다가 예종 원년 1469년 2월10일 돌아가셨다. 묘는 상주군 화동면 덕곡리 가산곤좌이다. 부인은 숙인 상산김씨 공조참판 정간貞幹의 여식이고 세조13년 1468년 10월10일에 졸하였다.묘는 쌍분雙墳이다. 공은 3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 안정彦貞은 진사, 차남 귀정貴貞은 조산대부朝散大夫 속봉찰방速峰察訪, 3남 필정弼貞은 통정대부이다. 생각하건데 공은 현조의 후예로서 학덕을 겸비하여 자손이 현달하고 번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