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신경가문 문화유산 탐방

영월신씨 영광 입석리 종가화로

신선 2020.11.22 21:52 조회 수 :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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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아들 낳아 원님으로 보내려면 남쪽 옥당골(영광)이나 북쪽 안악골(황해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다. 전남 영광은 그만큼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소문나 있었다. 옥당골에서 유명한 집안이 영광읍 입석리에 자리잡은 영월신씨(寧越辛氏) 대종가이다. 조선 정종 때인 1400년 무렵에 처음 터를 잡은 이래 600년 18대를 이어온 집안이다. 신씨 집안의 독특한 전통은 불씨이다. 자그마치 600년 18대의 세월을 거치면서 화로에다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이어왔던 것이다. 성냥이나 라이터가 없었던 시절에 불씨를 보존하는 일은 큰 일이었다. 양반집에서 남의 집에 불씨 얻으러 가는 일은 창피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불씨는 집안의 정신을 이어가는 혼불로 여겼기 때문이다. 불씨를 유지하기 위해서 대대로 이 집안에는 5개의 화로가 종부에게 전승되었다. 한 개의 주화로와 네 개의 보조화로가 그것이다. 두 개의 작은 화로는 제사를 모실 때만 사용하고, 나머지 세 개의 화로는 불씨를 보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부엌 아궁이의 불씨를 안방으로 옮겨놓고, 밥을 할 때는 다시 안방의 불씨를 아궁이에 옮기는 식이었다. 18대 종부인 안애순(安愛順·68)씨는 시집올 때 시댁으로부터 받은 함 속에 불씨를 상징하는 숯과 곡식이 든 주머니를 받았다. “며느리가 불씨를 꺼뜨려서 남의 집에 빌리러 가는 것은 곡식을 빌리러 가는 것보다 더 창피한 일이다”는 시어머니의 당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종부의 건강이 악화되고 가스레인지가 들어오면서 불씨를 더 이상 보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600년을 이어오던 불씨는 아쉽게도 멈추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영월신씨의 외손 가운데 한 사람이 2003년에 그 불씨를 화로에다 되살려서 보관 중이다. 그 화로가 요즘 종로 일대에서 유명한 ‘신씨화로(辛氏火爐)’라고 하는 음식점이다. 신씨화로는 한국식 직화구이, 그리고 600년 불씨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일본무역진흥공사(JETRO)’에서 자료조사를 해간 적도 있다. 전국의 음식점들이 ‘솥단지를 내던지는’ 불황을 겪고 있지만, 종가에 내려오는 600년 콘텐츠를 활용해서 그 불황을 뚫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