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신경가문 문화유산 탐방

신 재 춘 (31世 상장군공파) 記

대종회 監事. ㈜오투오아시아 대표 

 
창녕 영산에 있는 취산제鷲山齊에 올라가 보면 취산제를 지으면서 그 내력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한“鷲山齋記”현판이 있습니다.
내용에 보면 시조공이신 경鏡께서는 신라말 중국에서 오신 8학사의 한분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산은 처음 정착하신 우리 관향으로 되어있습니다.
어린시절에 이런 가문과 조상의 이야기를 어른들로 부터 들을 때에“그렇다면 현 중국 어디엔가 우리 최초의 조상 기록이 있지 않을까”하고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단지 사업을 하면서 틈틈히 역사서를 보는 정도 입니다. 찾아보니“고리국”高莘씨 기록도 있고 또 더 올라가면 황제 제곡 高辛씨관련 기록도 나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고대로 전해오는 서적중에 산해경山海經이었습니다. 산해경은 특정 저자가 누구인지, 어느 왕조에서 편찬 된 것인지 현재로 정확하게 나온것이 없습니다. 단지“산해경”은 전해 오기로는 우禹 임금의 치수治水 신화에 근거하여 우 임금과 익益이 이 책의 저자라고도 하나 정확치 않으며, 산해경의 성격을 한 가지로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지만 인문지리서와 신화집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산해경은 진작부터 동양고전, 동양신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문지리의 표기가 많은 사실들을 내포하고 있어 사서에 많이 등장합니다. 현존하는 산해경은 18권으로 원래 古本 산해경은 32권 이었으나 前漢의“유흠”이 지금 편제로 정리하여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되었고 이를 합쳐 산해경으로 불립니다. 특히 사료고증에 까다로왔던 청靑나라 역사서에 많이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산해경山海經을 이야기하며 또 다른 중요한 史書가 있어 소개 합니다.“흠정 만주 원류고欽定 滿洲 源流考”라는 史書가 있습니다. 청의 제 6대 황제이며 호학가인 고종의 지시로 건륭 43년(1777)에 한림원 주관으로 대학사大學史 아계阿桂 우민중于敏中등 많은 학자들을 동원, 중국의 역대 史書들의 기록들을 검토, 정리하여 古代로 부터 靑初인 18세기초까지 滿洲지역에 존속했던 많은 族屬들, 곧 청을 세운 女眞族을 위시하여 우리 韓民族과 여타 족속들의 부족, 강역, 산천, 풍속 등을 나누어 상세하기 기록한 史書 입니다. 그런데 산해경은 흠정만주원류고에 여러차례 인용 되어져 나옵니다. 다시말해 왕조의 사가들이 기본 참고자료로 활용할 만큼 산과 강 그리고 산물 등 지리적 사실과 부락 국가등 역사화 신화적 사실을 모두 기록한 백과사전이라 평가 받습니다. 중국혼中國魂 이라고하는 루쉰魯迅: 본명 周樹人)이 평생을 아끼며 보았던 고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申菜浩선생의“朝鮮上古史”와 리지린의“고조선연구”에 기본 참고 자료로 사용 된 바 있습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지명과 산, 강은 오늘날 중국 그리고 동북지역에 그대로 나오는 지명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과 고증을 중시하는 청대의 역사서로 인용되어 왔던 것이지요. 산해경의 작성연대와 저자는 청대에 와서 정리되었는데 BC 3~4세기경에 여러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라고 합니다. 산해경중 18편 해내경에는 여러 나라들 이름이 나와 있는데 우리역사에 중요한“朝鮮”이라는 이름도 처음 나옵니다.“동해의 안,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朝鮮이라고 한다”이러한 산해경의 해내경海內經 편 에 우리 辛씨나라 관련 기록이 있어그대로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유황신씨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영역은 사방 300리 이고 이곳은 매우 번성하였다. 파수산이 있는데 승수가 여기에서 흘러나온다. 有國名 曰 流黃辛氏, 其域中方三百里, 其出是塵 有巴遂山 憴水出焉“창녕 영산의 취산제鷲山濟에 들어가려면 맨 먼저 심원문深源門”을 지나서 가야 합니다. 심원문을 영격사 맨 앞에 두는 이유는“늘 근본을 캐고 물어야 한다”는 조상님의 가르침이기 때문 이지요. 그것이 세상사를 대하는 기본이라고 배웠습니다.
후손들이 조상을 모시고 절하는 이유는, 나와 우리의 현재가 늘 근본에서 나온것을 감사드리며“봉조양손棒祖養孫”하기 때문입니다. 산해경山海經에서 나온 辛씨국이 300리나 되는 영토를 가졌다는 기록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 봅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文化와 歷史가 현재에도 살아 숨쉬며 이어가기를 바라는 후손으로 한 편으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조상님들이 그래온 것 처럼 말입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연구와 객관적인 자료수집이 필요한 듯 하여 기록해 봅니다. 신임 大宗會長을 중심으로 대종회와 많은 종인님들이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