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판서공파

판서공파영광문중새계도부분.JPG 9世 한 - 10世 군재 - 11세 비 - 12世 거 - 13세 당계 - 14세 운길 - 15세 보안

 

16世 사봉斯鳳 과 사구斯龜 중  둘째아드님 사구斯龜 祖 입향조이시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1996년 발행된『古文書集成 28-靈光 寧越辛氏篇(Ⅱ)』의 영인 자료에 수록한 내용이다. 

영월신씨가 전라도 영광에 자리 잡은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엽으로, 그 이전에는 서울의 사족士族이었다.

이들이 영광에 입향, 세거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신유일辛惟一(1569~1632)은 족보 서문에서 “……국조 초에 6대조 보안保安이 영광태수가 되었다가 부윤 한이韓彛와 서로 친하게 지냈다. 뒤에 保安이 광주목사로 가게 되자 한이와 한 아들을 (그의 딸과) 혼인시켜 영광에 남아있게 했다. 영광에 신씨가 있게 된 것은 이로부터이며, 大宗은 경사에 거주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신씨들은 立石里를 중심으로 한 영광군 일대에서 500여 년 동안 거주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이들 가운데 신장길辛長吉·신영길辛永吉 형제, 신유일·신응순辛應純·신응망辛應望 등이 드러난 인물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자료는 치부置簿·기록류와 시문이다. 치부류는 인간의 다양한 경제활동의 결과, 그 복잡한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문서화해 놓은 기록을 말한다. 이때의 치부는 주로 수치를 기록한 것이 대부분으로서 노비문서, 전답문서, 각종 농업 경영 관련 문서와 일기류(주로 치부 관계) 등이다. 시문에는 상을 당한 사람이나 제삿날 고인을 추모해 쓴 만사輓詞 제문, 기문, 행장, 묘지명 등 이 가문 출신 인물들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간추려 수록되어 있어 신응순, 신응망, 신영규 등의 일생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