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성세전록
신씨득성세전록(辛氏得姓世傳錄)
辛씨 성은 4000여년전 중국의 하(夏)나라 제2대 계왕(啓王)의 다섯지자(支子)가 5관(다섯태자궁)으로 위를 분봉할 때 그 갈린 한분이 莘이었는데 史記에
나라에서 분봉할 때 사용한 사성을 성으로 했기 때문에 자손이 초(艸)를 제거하여 신씨로 하였다.
몇몇 문헌(各種 文獻)에 의하면 중국 하나라 계왕의 2남인 신진[中國 夏나라 啓王(帝盧高莘王)의 2男인 莘鎭]의 후손이 중국 롱서성(中國 隴西省) 지방을 중심으로 분포, 그 후손이 "신(莘)의 "초(艸)"를 제하고 신(辛) 字로 사용 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신경(辛鏡)은 신진(莘鎭)의 제171세손이 된다고한다.
당나라 때 신씨가 사신으로 신라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 살면서 파사락의 벼슬을 하였으나 이름이 전하지 아니하며 본이 중국 롱산인이라 한다
관향체명록(貫鄕遞名錄)
영산 靈山
영산현(靈山縣)은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新羅신라의 서화현인데 경덕왕이 상약으로 고쳤고, 고려 때 靈山영산으로 改稱개칭하여 밀성에 속했다가, 원종 때 별도로 감무를 설치하였다 조선조에 영산으로 고치면서 상부 관청은 경주요 거진관(軍營)은 대구로 하였다. 별호는 축성 축산이다, 1913년에 창녕군에 병합하여 靈山面영산면이 되었다.
영월 寧越
영월(寧越)은 본래 고구려의 내생현으로 신라 때는 내성현이었고 고려 때 영월로 고치면서 원주에 속하다가 공민왕 때 군으로 승격하였으며 조선조에는 그대로 영월군으로 하다가 숙종 무인년에 장능을 추봉하면서 진을 설치하여 도호부사를 두다 별칭으로는 내생 내성 영성 금성 영천 영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