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신경가문 문화유산 탐방

조선 중종 무렵 신응시辛應時는 호남 어사가 되어 남원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불교를 독실하게 믿던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가지고 있던 재산을 거의 다 만복사萬福寺라는 절에 문서와 함께 바쳤다. 그러나 그는 그 후 굶어죽는 지경에 이르렀고, 자식들도 고아가 되어 빌어먹게 되었다. 빌어먹던 자식은 생각다 못해 그의 부친이 기부했던 전답을 절 측으로부터 돌려받고자 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남원부에 여러 차례 소장을 내서 딱한 사정을 호소해보았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마침 신응시가 그 곳을 들렀을 당시 그가 낸 소장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사시전토본위구복  捨施田土本爲求福    땅을 시주한 것은 본래 복을 구하고자 함인데
신기기사자우행걸  身饑旣死子又行乞    몸은 이미 굶어죽을 판인데다 아들 또한 빌어먹고 있으니
불지무령거차가결  佛之無靈據此可結    부처의 영험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환전어주수복어불  還田於主收福於佛    그러니 땅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복은 부처에게 바쳐라
 
 
구복적인 마음으로 불교를 신봉한 사람이 낭패를 당한 것은 많이 있을 수 있으나 부처에게까지 판결을 내린 극히 드문 조선시대 최고의 명 판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종보 제25호, 2015. 11. 30]
 
 
신기진 (35世)  판서공파 대종회 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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