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신경가문 문화유산 탐방

영산신씨 집성촌 지랑마을 소개

芝山 2021.05.08 10:20 조회 수 : 968

 

  여기에 영산신신씨가 4백여 년 이상 세거 해온 집성촌(集姓村)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부 고속도로에서 통도사 IC를 나와 부산방면으로 약 1km정도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지방도로에 접어들어 구비를 돌고 고개를 넘어 약 4km 정도 가면 우측 산 기슬 도로변에 정여각이란 비각이 돌담 속에 묻혀있으며, 저 앞산 넘어 보라CC가 보이고 하천가에 큰 당수목이 있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지랑마을에 이른다.

 

  이 곳에는 봉양재(鳳陽齋)란 재실이 있으며 재실입구 도로변에 지랑마을 영산신씨 세거지 (靈山辛氏 世居地)란 갈석비(碣石碑)가 3m 정도 높이로 우뚝하게 세워져 있으며 그 비석의 후면에 마을의 내력 등 아래와 같이 비문이 각명(刻銘)되어 있다.

 

  [영축산 정기가 정족산에 이어 봉양산기슭에 모이고 방기천이 조일천으로 상금수와 합류하여 지랑천을 이루니 산수가 조화로운 양지쪽에 옹기종기 터전이 마련된 이 고장은 영산신씨 집성촌 지랑 마을이다. 영산신씨 시조공으로 13세 손 乙和 조가 관직이 경상좌도 수사요 언양입향조이며, 15세 손 碩丸 조는 도총부 도총관으로 사초문제 처벌을 위해 연산군이 명한 지의금부사를 버리고 하잠으로 은둔하였으며, 17세 손 光胤 조는 통정대부 훈련원 판관으로 선무원종공신이며, 아들 삼형제 중 막내 18세 손 어모장군 훈련원 판관 蓁 조가 지랑 입향조이다. 백형 도호부사 荃 조는 하잠에 세거하고 중형 萱 조는 방기에 정착하여 셋 마을이 모두 같다하여 三同이 되었나 보며, 지랑마을은 삼형제 중 막내의 후손이라하여 末郞이라고도하나 조선 중기에 芝山이라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旨朗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여기 정착 후 사백년 가까운 성상이 흐르는 사이에 산하가 변천되고 병란이 거듭되었으나 많은 후손이 관계 학계 재계에 진출하여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였기에 이제 고법에 의하여 세거비를 삼가 세워 후세에 전하고자 하니 영산신씨의 앞날의 번영이 더욱 기대되며 마을 역시 자손만대로 영구불멸 할 것이며 더욱 번창하리라 믿는다.]

 

  이 곳 지랑(旨朗)마을은 원래 지금 마을이 있는 곳의 서편 골의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으며 소년 죽음이 하도 많아 걱정을 하던 중, 어느날 지나가는 도사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방비책을 물어보니 도사가 말하기를 [담뱃대에 담배 한대를 넣고 불을 댕겨 담배를 피우며 아래로 내려가다가 담뱃불이 꺼지는 위치에 자리를 잡아 마을을 옮기면 모든 액운을 피할수 있다.]하여 지금 마을 위치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으며 원 마을이 있었다는 골의 골짜기 주위에는 사기그릇 및 옹기조각이 지금도 많이 발견되어 옛이야기를 뒷밭침하여 주고 있으며, 마을의 앞에는 용마등(龍馬嶝)이 솟아 그 위에는 투구등(鬪狗嶝), 우측에는 날카로운 칼등(劍嶝) 등 마을의 형상이 장군(將軍) 태산혈(胎産血)이라 하여 옛부터 무관이 태어나는 곳이라 선조들의 무과급제를 후세에 알림이라고 영산신씨(靈山辛氏) 후손들은 말하고 있다.

 

  지랑(旨朗)마을의 형성년도는 확실한 기록은 없으며, 또한 명칭도 일명 말랑(末郞)이라고도 하는데 한때 지산(芝山)이라고도 표기하였으며, 지랑마을은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집성촌으로 지금부터 512년전인 1498년 연산군 4년(戊午)에 삼동골 하잠으로 은둔隱遁)한 신석환(辛碩丸) 조의 손자 3형제 중 장손 신전(辛荃) 조는 하잠에, 차손 신훤(辛萱) 조는 방기에, 막내 손인 신진(辛蓁) 조는 지랑마을에 각각세거함에 따라 신진(辛蓁) 조의 장남 희원(希遠) 조의 출생이 1626년 인조 4년(丙寅)이므로 380여년 전통의 신씨 집성촌이라 본다.

 

  마을 어귀에 정여각(旌閭閣)이 있는데 이는 영산신씨 21세 손인 몽용(夢龍) 조의 비(妣)인 열부(烈婦) 김해김씨의 열정을 기리기 위하여 1748년 조선조 영조 24년(戊辰)에 조정에서 포상을 내리시고 이 정여각(旌閭閣)이 세워 졌다. 그 후 풍우(風雨)에 퇴락(頹落)하고 회신(灰燼)된 것을 1955년도에 문중 종인들의 성의로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마을 중간에 있는 봉양재(鳳陽齋)란 재실(齋室)은 1926년(丙寅)에 지랑 입향조 어모장군(禦侮將軍) 진(辛蓁)의 11대 손인 신상현(辛相賢)이 주축이되어 건립하였으며, 영축산(靈鷲山) 맥을 이은 봉양산(鳳陽山)의 정기가 지랑문중을 번창하게 하였으므로 마을 앞산 이름을 따서 봉양재(鳳陽齋)라 하고 대문(大門)은 먼 옛날 선조들의 사랑과 봉양산의 정기가 돌아온다는 뜻에서 원귀문(遠歸門)이라 한다.

지랑세거비 20140422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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