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辛씨인물

신석조(1407~1459, 태종 7~세조 5)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초명初名은 석견石堅, 자는 찬지贊之, 호는 연빙당淵氷當, 영산靈山출신이다. 

그의 조부는 태종 때의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와 평안도 도안무사都按無使를 역임하면서 전후 25회나 왜구를 격퇴한 유정有定이고, 부父는 세종 때 경상도 관찰사, 병조참판, 형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인손引孫이다.

신석조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으며, 1426(세종 8)년 생원시에 장원급제한 후, 문과에 합격하여 집현전 정8품 저작랑著作郞에 선발 보직되었다. 집현전은“문관 가운데서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고 나이 젊은 사람을 뽑아 오로지 경,사經史의 강론을 일삼고 임금의 자문諮問에 대비”하는 기관이었다. 세종 자신의 말로도“집현전은 오로지 경연經筵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라 할 정도였다. 따라서 집현전 관원은 당대의 최고 석학碩學이 임명되었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을 뽑아 아침 저녁 강학講學하게 하였지만, 그래도 문학이 부진한 것을 염려하여 문학적 재능을 갖춘 젊은 문과 출신자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하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假讀書制를 실시하였다. 사가독서는 학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것은 1426(세종 8)년인데, 당시 집현전 저작랑이었던 신석조는 종5품 부교리副敎理 권채權採와 정9품 정자正字 남수문南秀文과 함께 최초로 사가독서제에 선발되었다. 이때 석조의 나이는 19세였다. 석조는 그 후 승진을 거듭하여 집현전 종3품 직제학直提學, 정3품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1456(세조 2)년에는 공조참판으로 음력 원단元旦에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명에 파견되는 사신의 선임選任은 의정부, 육조, 대간에서 당대 최고의 외교 능력을 겸비한 학자를 복수 천거하면 왕이 간택하여 임명하였다. 대개 청렴淸廉하고 외모가 출중하며 언변言辯이 뛰어난 자로서, 품계가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상의 문관이 선발되었다.

신석조가 집현전 관원이 되어 최초로 사가독서의 혜택을 받은 것, 정조사에 임명된 것, 그리고《고려사》·《세종실록》·《의방유취》·《경국대전》편찬에서 주역을 담당하였던 것은 그 학문적인 깊이와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한편, 그는 국왕의 시정방향을 바르게 제시하는 많은 상소를 올렸는데, 특히 1456(세조 2)년 9월에 대사헌(현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중에 올린 상소문은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백성을 위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고금古今의 위정자들에게 역사의 귀감이 된다. 백성을 근본으로 여기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라고하여 만고의 진리가 돋보이는 명문이라 상소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대저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번거롭지 않는 것이 가합니다. 근자에 권간權奸이 권세를 임의로 하여 조정朝廷의 정사를 변란變亂시키고, 해가 연하여 흉년이 들어 공사公私가 함께 핍절乏絶되었으니, 가위 나라가 흠점이 있고,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 하겠습니다.

오직 마땅히 무마撫摩하고 안집安輯하여 방본邦本을 진정시키어 절약하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고 농상農桑을 권하고 부비浮費를 생략하고 용식冗食하는 것을 태거汰去하여 군국軍國의 물자를 저축하고, 모든 중외中外의 긴급하지 않은 일을 일체 정파停罷하여 일 없는 것을 행하여 백성으로 더불어 휴식休息하여야 합니다. 올해에 비로소 풍년의 조짐이 있었으나 절후節侯가 일찍 추워지고 또 바람과 서리의 재앙이 있어 흉년든 땅이 많습니다. 

…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데, 농사일이 이와 같으니 길이 탄식할 일입니다. 신은 구구區區하고 간박懇迫한 어떤 일보다 지극한 정성으로 백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계책이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이 튼튼하면 나라는 저절로 편안하여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시초에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 그 시초를 올바로 하시었으니, 천위天位의 어려운 것을 깊이 생각하시어 새롭게 여기시어 오늘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하시어, 하늘을 두러워하고 백성을 근심하게 간사한 사람을 버리고 바른 사람을 높이고 시종 학문에 생각을 두어 날마다 경연經筵을 열어 견문을 넓히소서 … 힘써 조종祖宗의 이루어진 법을 따라서 후범後範을 보시어서 억만세 무강한 아름다움을 맞으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세조실록』권5, 2년 9월 3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명언은 정치 참고서의 고전으로 치는《정관정요貞觀政要》에도 자주 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백성이 편하면 가정이 편하고, 가정이 편하면 나라가 편해진다”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신석조가 상소문에서 추구한“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는 우리에게 영원히 그림의 떡인가?

신석조는 개성부 유수종2품으로 재직하던 중 53세에 졸하였다. 시호諡號를 문희文僖라 하였는데, 학문을 널리 닦아 견문이 많은 것이 문文이고, 조심하여 두려워하고 겸손한 것이 희僖이다. 저서로《연빙당집淵氷當集》이 있다.

                                                                                            [대종보 제3호. 2005.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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