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당시 무관이던 신유정 공이 사망하자 내린 만가를 보관한 비각 이다.
초당공파 상주입향조 신서담(辛瑞聃) 어모장군충무위부사禦侮將軍忠武衛副司에게
공의 증조고(曾祖考)는 강원 부사와 평안도 도안 무사를 지낸 유정(有定, 1347~1426)이고, 시호(諡號)는 무절(武節)이다.
조고(祖考)는 경상감사, 형조판서,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인손(引孫, 1384~1445)이고, 호(號)는 석천(石泉),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고(考)의 휘는 계조(繼祖)이고, 號는 일암(逸庵)으로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어머니 초계 정씨(草溪鄭氏) 사이에 제3남으로 한양에서 태어나 어모장군충무위부사직에 올라 만년에 퇴거하여,
양주에서 지내다가 왕년(往年)에 상주의 산수 가경(山水佳景)을 불망(不忘) 하시고, 상주 화동 평산으로 이거하였으며, 이곳에는 무절(武節)公의 어만각(御晩閣)이 있다.
세종대왕이 하사한 어제2절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의 묘소
상주 화령의 백두대간 상 봉황산(鳳凰山, 740.8m)에서 서쪽으로 산줄기가 비산비야(非山非野) 하다가 다시 힘차게 우뚝하게 솟아오르니 천택산(天澤山, 683m)이다. 팔음 지맥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남으로 팔음산(八音山, 762m) 밑 큰곡재에 닿기 전에 동으로 산줄기를 내린 가산(佳山) 끝자락에 큰 덤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영산 신씨(靈山辛氏) 상주 입향조(入鄕祖) 신서담(辛瑞聃, ?~1469)의 유택으로 양옆에는 가산골과 서당골이다. 깔끔하고 단정한 묘역의 명문(銘文)에는 「御貌將軍忠武衛副司直靈山辛公瑞聃之墓」로 새겼다.
공의 배위(配位) 상산 김씨(商山金氏, 시조: 諱 需)와의 사이에는 3남 3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