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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손辛永孫 公 - 14世 조 부원군

admin 2020.12.05 23:29 조회 수 : 118

신기상 초당30.jpg   용비어천가 line.jpg

글 :  신 기 상 (초당공파30世)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저작에 참여한 우리 선조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용비어천가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대강을 살펴보면 이렇다.  

조선왕조는 천명天命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세종의 직계 선대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태조太祖-태종太宗의 사적史蹟과 그에 대응되는 중국 역대 창업 제왕의 사적을 대구對句로 하여 읊은 노래인데 한자와 한자어에는 한문으로 운학적韻學的 주석을 달고 각장마다 6대 조상과 중국 제왕들에 대한 사적을 역시 한문으로 길고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용비어천가의 125장 중 1장 2장 3장이다. 세종 당시 이 글을 처음 접했을 사람들의 놀라움을 상상하면 새 세상을 보는듯한 경의驚疑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어명으로 각고 끝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었으나 새로 창제된 이 문자가 과연 실제 사용하기에 완벽한 문자체계인가, 추호라도 하자가 있지나 않을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대국민 발표를 늦추는 한편 이 문자가 문자로써의 기능을 다하는지 시험을 겸하여 조선 건국의 역사적 당위성을 담은 대 서사시를 짓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용비어천가를 접하기까지는 세상 사람들은 훈민정음이란 문자가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으로 된 첫 서사시이고 사실史實의 기록이요 악장(나라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불렀던 송축가頌祝歌이다. 그만큼 용비어천가 저작은 세종대왕의 중요한 정사의 하나였다. 

용비어천가 끄트머리의 글 발문跋文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구절이 있다. 

‘1445년에 권제權蹄·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가 125장의 노래를 지어 올렸더니, 세종은 기뻐하여 이름을‘용비어천가’라 내렸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은 다 펴보기가 어려운 일이므로, 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신숙주申叔舟·이현로李賢老·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신영손辛永孫 들에게 주해를 붙이게 하여 10권의 책을 만들었다.’

여기에 신영손 공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그러면 공은 이 학자들과 어떤 영역의 과업을 맡았을까? 위에 열거된 학자들 중 공을 제외한 다섯 분은 모두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들이면서 신숙주와 박팽년은 명나라의 운서 홍무정운(洪武正韻)에 준하여 당시 조선의 표준 한자음을 제정한 동국정운東國正韻 찬술의 주역이다. 곧 이들 학자는 오늘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언어학자요 국어학자요 음운론 학자들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다섯 국어학자는 주로 용비어천가에 실린 한자, 한자어에 대한 음운에 관한 주석을 맡고 신영손 공은 주로 용비어천가 내용에 따른 사적史蹟에 관한 주석을 맡았으리라 추측된다.

앞서 본 대로 용비어천가는 한문과 훈민정음의 혼용문으로 악장의 노래를 짓고 그 내용에 상당하는 한시를 지어 병기해 두었는데 이런 두 가지 노래를 세종대왕이 보시고 여기 관련된 사적을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주해를 달도록 명한 것이데, 이 주해는 순 한문으로 되어 있고 그 양이 방대하고 내용은 목조~태종의 사적과 이에 상당하는 중국 역사의 기록들을 실었다. 당시로써는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에 놀라고 그 문자로 지은 악장에 놀라고 그 악장의 배경을 샅샅이 기록한 역사적 사실에 놀라고 그 한자와 한자어에 대한 세세한 언어학적 주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 놀라운 일의 일익을 우리 선조 공께서 맡으셨다니 존경스럽고 머리가 수그러지지 않을 수 없으며 공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시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는가. 

공께서는 세종-문종-단종-세조대에 황해도 관찰사, 충청도 관찰사, 강원도 관찰사를 비롯한 여러 중요 관직을 지낸 기록이 있어 학문뿐 아니라 행정에도 뛰어나신 분임에 분명하다. 영월신씨 문중 총무를 맡고 계신 신혁 님의 도움으로 공은 부원군파 19세임을 알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몰연대는 알 길이 없고,‘靈山·寧越辛氏寶鑑 1권 제3장’‘靈山·寧越辛氏의 人物’편에도 올려 드리지 못했음이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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