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辛씨인물
辛씨인물 http://신인손辛引孫 

신인손(辛引孫, 자는 조윤(祚胤), 호는 석천(石泉)) :조선전기 한성부판사, 병조판서,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신원경(辛原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이고, 무절공(武節公) 신유정(辛有定)의 아들이었다. 

 

신인손방부.JPG

1402년(태종 2) 식년시에 생원으로 급제하고 1408년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병조판서·대제학에까지 올랐다. 처음 사관(史官)에 보임되고, 1413년에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전임되어 항상 여러 대군(大君)과 함께 경전(經典)과 사기(史記)를 강론하였다.

임금(세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더욱 권대(眷待)하여 친히 난죽(蘭竹) 병풍을 써서 주었다. 여러번 옮겨 예조 정랑에 있을 때에 도총제(都摠制) 권희달(權希達)을 따라 경사(京師)에 갔는데, 희달이 이르는 곳마다 사나움을 부리므로, 인손이 공손한 말로 바로잡아 마침내 큰 실수를 면하였다.
경자년에 내섬소윤(內贍少尹)에 제수되고 의정부 사인(舍人)으로 옮겼다가, 무신년에 사헌 집의(司憲執義)에 제수되었는데, 일로 장관에게 거슬려 선공감 정(線工監正)에 좌천되고, 경술년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겸 지형조사(知刑曹事)가 되었다.
임자년에 사간원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에 옮겼다가 조금 뒤에 형조 우참의(刑曹右參議)에 제수되고, 나가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다음해에 마침 흉년이 들어서 특명으로 유임하였다. 
갑인년에 병조 좌참의를 제수 받고 조금 뒤에 승정원 우승지로 옮겼다가 도승지로 승진하였다. 무오년에 병조 참판에 제수되고, 갑자년에 주문사(奏聞使)로 적왜(賊倭)를 압령(押領)하여 경사에 갔다가 칙서(勅書)를 받들고 돌아오매, 안마(鞍馬)를 주고,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승진되고,형조 판서에 전임하였다. 

을축년 정월에 병에 걸리매 의원을 보내어 치료하고, 예문관 대제학에 옮기었으나, 병으로 직책에 나오지 못하였고, 5월에 어머니 상사를 당하여 애훼(哀毁)로 더욱 위독하여지매, 글을 주어 고기 먹기를 권하였으나 드디어 낫지 못하고 죽었으니, 나?62세 이었다. 
조회를 2일간을 정지하고, 관곽을 주고 조의와 부의를 의식과 같이 하고, 시호를 공숙(恭肅)이라 하였으니, 벼슬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공(恭)이라 하고, 집심하여 결단하는것을 숙(肅)이라 하였다.
인손은 성품이 강직하여 아첨하지 않아서, 사람의 잘못하는 것을 보면 용서하고 참지 못하고 곧은 말로 배척하 였다. 아들은 신석조(辛碩祖) 신계조(辛繼祖) 신윤조(辛潤祖) 신봉조(辛奉祖) 신경조(辛敬祖)이었다. 


<문종 008 01/06/01(무진) / 6 394면 

 

세종 109, 27(1445 을축 / 명 정통(正統) 10) 725(정유) 2번째기사

전 형조 판서 신인손의 졸기

전 형조 판서 신인손(辛引孫) 이 졸()하였다. 인손 의 자는 조윤(祚胤) 이니 무절공(武節公) 신유정(辛有定) 의 아들이었다. 무오년에 과거에 급제, 사관(史官)에 보직되었다가 계사년에 승정원 주서(注書) 에 전임(轉任)하여, 항상 여러 대군과 서사(書史)를 강론하였다. 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더욱 권대(眷待)하여 친히 난죽(蘭竹) 병풍을 써서 주었다. 여러번 옮겨 예조 정랑 에 있을 때에 도총제(都摠制) 권희달(權希達) 을 따라 경사(京師) 에 갔는데, 희달 이 이르는 곳마다 사나움을 부리므로, 인손 이 공손한 말로 바로잡아 마침내 큰 실수를 면하였다. 경자년에 내섬 소윤(內贍少尹) 에 제수되고 의정부 사인(舍人) 으로 옮겼다가, 무신년에 사헌 집의(司憲執義) 에 제수되었는데, 일로 장관에게 거슬려 선공감 정(線工監正) 에 좌천되고, 경술년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겸 지형조사(知刑曹事) 가 되었다. 임자년에 사간원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 에 옮겼다가 조금 뒤에 형조 우참의(刑曹右參議) 에 제수되고, 나가서 경상도 관찰사 가 되었는데, 다음해에 마침 흉년이 들어서 특명으로 유임하였다. 갑인년에 병조 좌참의 를 제수 받고 조금 뒤에 승정원 우승지 로 옮겼다가 도승지 로 승진하였다. 무오년에 병조 참판 에 제수되고, 갑자년에 주문사(奏聞使)로 적왜(賊倭) 를 압령(押領)하여 경사 에 갔다가 칙서(勅書)를 받들고 돌아오매, 안마(鞍馬)를 주고,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에 승진되고, 형조 판서 에 전임하였다. 을축년 정월에 병에 걸리매 의원을 보내어 치료하고, 예문관 대제학 에 옮기었으나, 병으로 직책에 나오지 못하였고, 5월에 어머니 상사를 당하여 애훼(哀毁)로 더욱 위독하여지매, 글을 주어 고기 먹기를 권하였으나 드디어 낫지 못하고 죽었으니, 나이 62세 이었다. 조회를 2일간을 정지하고, 관곽을 주고 조의와 부의를 의식과 같이 하고, 시호를 공숙(恭肅) 이라 하였으니, 벼슬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공()이라 하고, 집심하여 결단하는것을 숙()이라 하였다. 인손 은 성품이 강직하여 아첨하지 않아서, 사람의 잘못하는 것을 보면 용서하고 참지 못하고 곧은 말로 배척하였다. 아들은 신석조(辛碩祖) · 신계조(辛繼祖) · 신윤조(辛潤祖) · 신봉조(辛奉祖) · 신경조(辛敬祖)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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