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씨
 
 
 
 
 
덕재공파

성리학 6군자를 모신 도통사 제향도 간소하다. 덕재德齋 신천辛蕆 

 

2020년 10월 26일(음 9월 10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 능안로(방축리 산릉)내에서 안향의 문하에 이름난 여섯학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도통사의 제향이다. 충북, 음성 등지의 유림이 주관하던 제향도 코로나로 인하여 아주 간소하게 향배를 올렸다. 

충렬왕 15년 안향이 원에서 성리학을 수용하고 귀국하자 일차적으로 그의 문하에 이름난 여섯학자(육군자)이었던 권부·우탁·백이정·이조년·이진·신천 등에게 이를 전하였다. 이들은 안향으로부터 성리학을 전수받고 이후 이를 보급하는 선봉에 서게 된다. 이들은 당시 학계에서 육군자란 호칭을 받게 된다. 이는 성리학의 본향 송나라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송조육현(宋朝六賢)이라고 부른 것과 같다. 이는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 주희(주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연령순으로는 이진(李瑱, 1244, 고종31~1321, 충숙왕8), 백이정(白頤正, 1247, 고종34~1323, 충숙왕10), 우탁(禹卓, 1262, 원조3~1342, 충혜왕 복위3), 권부(權溥, 1262, 원종3~1346, 충목왕2), 신천(辛蕆 1264~1339, 충혜왕 복위 즉위년), 이조년(李兆年, 1269, 원종10~1343, 충혜왕 복위4)이지만 덕재공께서 적극 나서서 1319년 6월에 총랑(摠郎)으로 있으면서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극력 주청하여 스승을 문묘(文廟)에 종사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성리학은 이를 도입하고 육군자를 비롯한 후학과 문생을 기른 회헌안향(安珦)으로 시작되어, 6군자(권부, 백이정 외)-익재 이제현(李齊賢)-가정 이곡(李穀)-목은 이색(李穡)을 거쳐 포은 정몽주(鄭夢周)-야은 길재(吉再) 그리고 양촌 권근(權近)-송정 김반(金泮)으로 흐르고, 이어 강호 김숙자(金叔滋)-점필재 김종직(金宗直)으로 이어지고, 다시 두 제자 일두 정여창(鄭汝昌)과 한훤당 김굉필(金宏弼)로 흐르고, 김굉필은 정암 조광조(趙光祖), 모재 김안국(金安國) 서봉유우(柳藕), 신당 정붕(鄭鵬)으로 이어졌다. 이후로도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李滉)과 율곡 이이(李珥)로 이어졌다. 퇴계는 월천 조목(趙穆), 서애 유성룡(柳成龍), 학봉 김성일(金誠一), 고봉 기대승(奇大升), 한강 정구(鄭逑)에게 이어졌고, 율곡은 사계 김장생(金長生), 중봉 조헌(趙憲), 수몽 정엽(鄭曄)에게 전수되었다.

일컬어 고려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 정치와 학문의 중심을 이룬 성리학의 시봉이었다.   

-덕재공종회 사무국장 신원근201026 음성도통사.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