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덕재공파 30세 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1986.4.25 지정
충익공의 영정은 이모본(移摸本)으로서 청난공신에 책록된 것을 기념하여 王命에 의하여 立閣圖形된 功臣像이다.
像容형식은 좌안7분면에 供手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정장 관복차림의 전신좌상(全身座像)이다.
이것은 7 분면의 形容 양어깨의 경사진 각도가 심한 차이를 보이며 단령 자락을 들고 앉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세모골의 형태 단령團領의 트임 새에 내 비치는 단령 내부의 옷감과 족좌 대 밑에 깔린 채전 등은 조선 중기 공신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화상찬(畵像贊)
씩씩한 公의 기운은 당당한 그 의(義)로다.
곤수(명나라 절도사의 이칭)를 불러 임무를 행하게 하니 종사(宗社)를 보호했도다.
천추에 꽃다운 이름 기리 전하여 썩지 않으리라. 얼굴에 칠성(七星)의 占있으니 이는 궁마(弓馬)의 재능이로다.
判書 도천 趙明履 씀
公은 모습이 우람하고 크며 우뚝히 어른의 기품이 있다 官職에 있을 때 職務를 수행함에 法을 지켜 嚴正하고 淸廉하며 질박하고 검소하여 화려한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주 州郡에 역임되었으나 집에서 먹고 입는 것은 한결같이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그리고 性品이 지극히 孝誠스러웠다 늘 녹봉祿俸으로 부모님을 봉양하지 못 한 것을 生을 다 할 때까지 슬프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청난공신.선무원종공신에 책훈되고 영성군에 策封댔고 正卿(정2품이상 벼슬)이라는 높은 관직에 증직되고 충익공시호를 받었다
“영정”은 충북 괴산 군청안면 문방리 소재 애연사당에 봉안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