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저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유물선 목간에 화물수취인 辛允和 시랑(정4품)
당대의 정치·군사·경제 실상과 生活史를 밝혀줄 타임캡슐
고려 대몽(對蒙) 항쟁기인 1260~1268년, 전남 여수에서 짐을 가득 실은 선박 한 척이 출항했다. 행선지는 당시 임시 수도인 강화도. 권력자들에게 바칠 각종 곡식과 말린 생선, 젓갈 등을 싣고 힘차게 떠난 배는 서해안 연안을 따라 북상하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좌초돼 그대로 가라앉았다. 해저 지형이 복잡하고 조류가 빨라 예부터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리던 곳이다.
바닷속 갯벌 깊숙이 파묻혀 있던 선박과 유물이 750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지난 5월부터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 발굴 중인 13세기 선박‘마도 3호선’(길이 12m, 너비 8m)에서 목간 32점과 도기호(陶器壺) 28점, 각종 곡물류, 사슴뿔, 장기돌 등 총 287점을 찾아냈다고 6일 밝혔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려 선박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 선박 구조의 전모를 밝힐 수 있게 됐다.
삼별초 지휘관은 장군급
특히‘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고 적힌 목간은 몽골 침략에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의 조직과 실체를 보여주는 중대한 발견이다. 삼별초가 좌·우 각 3번(番)으로 나뉘어 운영됐다는 증거이자 기존의 7~8품 하급 무반이라고 알려진 별초의 지휘관을 4품 시랑(장군과 같은 품계)도 맡았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진 것. 당시 별초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우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성낙준 소장은 “목간에 나온 화물 수취인에‘신윤화(辛允和) 시
랑(정4품)란 인명·직함이 나와《고려사절요》등에서 이들이 관직을 맡은 시기를 종합해 배의 침몰 시점을 1260~1268년으로 밝힐 수 있었다”고 했다.